EFT, 잘못 읽으면 독(毒) : ① 전투 지속 시간은 숫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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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사실 지금까지 피팅을 이야기하면서 "X분 X초를 지속할 수 있는 캡" 어쩌구를 운운했지만,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자아비판이랄까. -_-; 이미 EFT의 속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스킵해도 되는 글.


엔젤 랫 데미지 프로파일로 맞춘 아포칼립스

 EFT를 돌리다 보면 우리는 위와 같은 화면을 쉽게 접하게 된다. 위는 내 아포칼립스의 데이터에서 가져온 것인데(숫자가 크다고 놀라지 마라. 하드너 4장 바르고 엔젤 랫 데미지 프로파일에 맞춰서 저렇게 보이는 거다) 우리는 저걸 "11분 56초를 지속할 수 있는 캡"이라는 식으로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11분 56초 후에 빵 하고 배가 터지는(ㅋㅋㅋ)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제 미션 좀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모든 모듈을 휙휙 돌리는 걸 11분 56초 동안 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 사이에 랫을 제대로 줄여놓는다면 리페어를 껐다 켰다 하면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저 지속시간이 무한대에서 유한으로 떨어질 때, 그리고 긴 시간에서 짧은 시간으로 줄어들 때, 괜히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놓곤 한다.

 저기 Defence에 있는 숫자 중 밑의 것은 Reinforced Defence Efficiency다. 무한대로 리페어를 돌린다면(터렛을 껐다 켰다 한다든가, 에너지 전송을 받는다든가, 원래 무한탱킹이 된다든가 해서) 탱킹할 수 있는 DPS다. 위의 것은 Sustained Defence Efficiency다. 다른 모듈을 모두 작동한 상태에서 캡이 빵꾸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캡 33% 언저리에서 리페어를 껐다 켰다 하며 탱킹할 수 있는 DPS다.

 랫의 특징이나 패치 이후의 변화를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Eveinfo의 자료에 따르면 배쉽랫의 DPS는 마리당 100, 크루저랫과 배틀크루저랫의 DPS는 마리당 50정도로 보면 된다. 옵티멀 내로 달라붙어서 두들겨 패기 시작할 때 이야기니까, 멀리 있다면 숫자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 충분히 달라붙는다면 숫자만큼-혹은 그 이상으로 위협적이겠지만.

 저 아포칼립스의 데이터로 보면, 리페어를 껐다 켰다 하면서 배쉽 3마리+배틀크루저 1마리+프리깃 몇마리 정도는 탱킹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1분 56초 내로 랫을 그 정도까지 줄이기만 하면 된다. 산샤라면 탱킹 가능한 한도는 더욱 늘어난다. 하드너 4장을 바르고 산샤 Pirate Invasion의 데미지 프로파일을 맞추면 Defence에 뜨는 숫자는 642/783. 리페어를 껐다 켰다 하며 배쉽 4마리+배틀크루저 4마리 정도까지는 탱킹이 가능하다.




산샤 랫 데미지 프로파일로 맞춘 아바돈

 다른 하나의 그림을 끌어들여, 이 글의 제목을 풀이할 때가 되었다. 위는 내가 몰고 싶은 아바돈에 하드너 4장을 바르고 산샤 랫 데미지 프로파일에 맞춘 데이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캡의 지속시간은 3분 56초(하드와이어링 2개의 힘을 빌렸다). 지끈지끈해 보인다. 그러나 Sustained Defence Efficiency는 414. 3분 56초가 지난 시점에서도 산샤 배쉽 2마리에 산샤 배틀크루저 4마리 정도까지 탱킹이 된다. 빔피팅 아바돈이 배쉽랫을 터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고 1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번에 배쉽 6마리 배틀크루저 4마리는 웃으며 풀링할 수 있다는 이야기. 트리거 관리와 어그로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이 정도로 터질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몇몇 지독한 미션은 제껴야겠지 -_-;).




산샤 랫 데미지 프로파일로 맞춘 아바돈 (비교 컷)

 이제 이 그림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리라. 스킬과 모듈을 동일하게 맞추었지만 리그 자리에 SMC를 박은 아바돈은 5분 8초, CCC를 박은 아바돈은 3분 56초를 지속할 수 있다. 전투 지속 시간만 보면 SMC쪽이 나아 보인다. 그러나 Sustainded Defence Efficiency는 CCC쪽이 높다. 1분 12초의 차이와 산샤 배쉽 1대 정도의 DPS차이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타일이 갈라진다. 리페어를 계속 굴릴 수 있는 시간을 약간 희생하는 대신 지속적으로 탱킹할 수 있는 능력을 좀 더 확보하느냐(CCC), 리페어를 계속 굴릴 수 있는 시간을 1분 12초 더 확보하는 대신 지속적으로 탱킹할 수 있는 능력을 약간 희생하느냐(SMC)의 차이다. 나는 CCC쪽의 스타일이 귀찮거나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SMC보다 싸게 먹히는 리그값(!)에 매력을 느껴 아포칼립스에 CCC를 박았다. 아마 아바돈을 몰게 되더라도 CCC를 박게 될 것 같다.

 전투 지속 시간은 숫자에 불과하다. 숫자 중에서도 혼자서는 중요하지 않은 숫자에 불과하다. 하드너와 데미지 프로파일을 맞춘 상태에서 얻는 Sustained Defence Efficiency도 지속 시간만큼 중요하고(데미지 프로파일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참조하라), 그 미션에서 전투 지속 시간이 지나기 전에 랫의 DPS를 Sustained DE값 밑으로 떨어뜨릴 수 있느냐는 종합적 판단(어그로나 트리거와 같은 미션의 구성을 봄으로써 알 수 있다)과 실제로 그렇게 진행할 수 있는 파일럿의 역량 또한 중요하다.

 Penirgman ~ Shuria 라인에 접촉 가능한 에이전트를 여섯 명 거느리다 보니 어느 정도 미션을 골라먹을 여유가 있었고, 수락하는 미션의 대부분은 산샤와 블러드였다. 5분대의 캡 지속시간을 보였던 아포칼립스로도 산샤와 블러드의 미션은 문제 없이 진행했었다. 스킬을 좀 친 지금, 캡은 남아돌고 화력은 좀 부족하다는 감이 든다. 힛싱을 팩션템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배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아바돈을 몰아볼 생각이다. 나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새로운 도전에도 행운이 있기를.



 2009년 12월 26일의 조삼모사 : 50km급 타격에서 별다른 DPS 차이가 나질 않아 그냥 몰던 아포칼립스나 잘 몰기로 했다. 배쉽이 없는 상황에서 이거 살까 저거 살까 망설이고 있다면 모를까, 이미 배가 한 척 있는 상황에서 추가지출을 하기엔… 무리다.

 2010년 1월 5일의 조사모삼 : 결국 아바돈 런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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