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을 내고" 했던 MMORPG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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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뮤 온라인 (2000-2006, 띄엄띄엄)
 무료 오픈베타(2000), 상용화(2002), 프리서버(2005-2006)까지 유료·무료, 합법·불법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즐겼던 처음이자 마지막 MMORPG. 상용화 시절 본섭에서 에너지 요정을 키우면서 힐러 클래스에 눈을 떴다. 탱커나 딜러에 비해 장비가 좀 부실해도 OK고, 성실하고 믿을 만 하다면 컨트롤이 좀 떨어져도 모셔갔으니까(하지만 파전을 내서는 곤란하지!).

 MMORPG의 세계는 원래 불공평하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오픈베타 이후 프리서버를 할 때까지도 흑기사는 암울했다), 파티플레이의 기초를 배웠으며(탱딜을 동시에 하는 마검 2+메인버퍼 엔요+몹몰이 겸 서브힐러 엔요+몹몰이 쫄이라는 황당한 구조였지만-_-), 지금껏 재산이 되어준 훼력을 축적한(정말 무식한 노가다 게임이다. 아틀라스에 한 번 들어가면 두 시간은 나오질 않고 물고기만 몰아야 했으니까) 게임이다.



 2. 포가튼사가 2 온라인 (2001-2005, 띄엄띄엄)
 무료 오픈베타(2001), 상용화 초기(2002), 막장 돌입기(2005)에 걸쳐 했다.


 상용화 초기에는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계정비를 내지 않고 공짜로 한 적도 있었다. (저 정도 그래픽의 단순무식 노가다 게임을 위해 한달에 2만원이 넘는 돈을 냈다면 믿겠는가? 그런 나에게 길드워와 이브온라인은 충분히 reasonable한 가격이었다)

 내가 주력으로 키웠던 캐릭터는 성직자였는데, 역시 세상은 불공평했고(2차전직이 나오기 전까지 성직자는 몹시 암울했다) 가끔 그 불공평한 세상이 뒤집히는 재미도 있으며(2차전직이 나오니 몹시 강한 직업 "페이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함께 살지만 인생은 홀로 개척해야 했던(이 게임에 파티플레이가 도입된 건 상용화가 이루어진 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런 게임이다.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내가 플레이하는 MMORPG를 분석적·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새로운 사냥터, 새로운 아이템, 가끔씩 뿌려주는 이벤트(운영자의 3S정책이다!)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줄 알았던 방만한 기획과 운영에 질려버린 게임(눈으로 덮인 지방에 불의 정령 샐러맨더가 출몰하는 게 말이나 되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추억이 묻어 있어 아련한 게임. 결국 얼마 전 서비스 종료되었다.



 3. 길드워 (2004-2009)
 무료 오픈베타 때부터 유료화 이후까지, 챕터 1·2·3과 확장팩을 모두 질러서 육수가 흘러나올 때까지 우려먹었던 게임.


 레벨과 돈벌이라는 두 가지 노가다 요소에서 상당히 자유로웠고, "죽음"으로 인한 페널티가 없어서(경험치를 잃는다든가, 장비를 떨어뜨린다든가, 시체를 찾으러 돌아가야 한다든가 할 필요가 없다. 전투 중 사망하면 Death Penalty를 받지만, 이렇게 받은 페널티는 일종의 디버프로 전투가 종료되면 사라진다) 처음으로 PvP에 입문하게 된 게임.

 크게 두 가지 사항이 이브 온라인과 닮아 있어서 적응하기 편했다.

 1) PvP 방식
 로우시큐 잡질(≒랜덤 아레나) · 소규모 로밍 갱(팀 아레나) · 플릿 전투(길드전) 등. 앞에 소개한 것일수록 우연성이 강하고, 한 명의 캐릭터가 맡는 역할이 다양하며,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데미지의 양이 적다. 뒤로 가면 그 반대가 된다. 당연히 전투의 전략과 전술도 달라진다.
 4대 4 전투를 하는 랜덤 아레나와 팀 아레나 화력의 꽃은 어쌔신이다. 이브 온라인으로 치면 단독 전투 혹은 소규모 로밍갱에서 화력을 맡을 수 있게끔 피팅한 인터셉터나 AS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소규모의 자기 치유 스킬을 챙겨다니는 사람이 꽤 된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데미지의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그 정도로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브 온라인에서도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비슷한 양상(리페어나 쉴부를 갖춘 피팅 등)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8대 8 전투를 하는 길드전에서는 어쌔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파티가 그 정도 규모가 된다면 충분히 어쌔신을 무력화할 수 있고, 무력화된 어쌔신은 순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데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누워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브 온라인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플릿이 맞붙었을 때 화력피팅 인터셉터가 닥돌했다가는 웹에 걸려 순식간에 갈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규모 전투에서는…
 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데미지의 양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그것에 맞서 순간적으로 버티는 능력이 중요하다(길드워에서는 "회피"류 스킬과 "보호의 성령"이라는 몽크 스킬로 쏟아져 들어오는 데미지의 양을 줄인다. 이브에서는 버퍼탱킹과 저항세팅이 이에 해당되겠지).
 ② 자기 치유는 곧 망하는 길이다(힐은 몽크가, RR은 갱원이나 로지쉽이 해야 한다).
 ③ 위협적이면(몽크·메스머, 로지쉽·전자전기) 반드시 프라이머리로 찍힌다. 방어력까지 약하면 백프로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방어력을 보강하느라 덜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면(목숨은 질긴데 힐은 제대로 못하는 몽크, 탱킹은 좋은데 전자전 능력은 떨어지는 전자전기) 라스트가 되어버린다. 이게 늘 딜레마다. 나보고 어쩌라고!
 ④ 각 멤버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워크는 더 중요하다.
 ⑤ 정석과 변칙이 모두 존재한다. 이것은 빌드·피팅과 같은 개인 수준과, 파티·플릿의 구성 및 역할배분 같은 단체 수준을 모두 포함한다. 많은 경우 정석이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지만, 정석 잡자고 제대로 만든 변칙을 만나서 완전히 털리는 경우도 있다. 정석으로 했다가 패배하면 플레이어가 반성하지만, 변칙으로 했다가 패배하면 변칙 하자고 한 놈이 까인다("내가 발컨인가봐…" vs "누가 이걸로 하자고 했어? 다음번엔 그냥 무난하게 가자고!").

 2) 슬롯
 길드워는 8개의 스킬만을 가지고 전투에 나갈 수 있다. 이것을 "빌드"라고 부른다. 이브 온라인은 함선의 슬롯에 맞춘 모듈만을 가지고 전투에 나갈 수 있다. 이것을 "피팅"이라고 부른다. 빌드와 피팅은 전투 도중 변경할 수 없다. (쉽 메인터넌스 베이가 있는 함선이 플릿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일단은 제쳐두자 -_-a) 길드워에서는 효율이 좋은 "엘리트 스킬"은 1개만 들고 갈 수 있는 제한이 있고, 이브 온라인은 각 함선의 CPU와 Powergrid에 맞는-그리고 "제 위치"에 해당하는 모듈만 장착할 수 있는 제한이 있다.
 빌드와 피팅은 하나의 "조합"을 만들며, 조합은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갖는다. 이 강점과 약점이 물고 물리면서 전투의 전략·전술적 요소를 창출하며, 소규모 전투에서는 도박적인 스릴을(내가 잘 갈아버릴 수 있는 조합을 한 상대를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이란!), 대규모 전투에서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전투의 박진감과 짜릿함을(여기에는 도박적인 요소랄 게 없다. 대규모 편대의 전략·전술적 구멍은 패배로 직결되며, 그 책임은 그따위로 편대를 만든 편대장에게 있다. 길드워의 파티장에게 부과되는 책임도 비슷하다) 제공한다.
 특별한 강점도 특별한 약점도 없는 그저 그런 조합은 전장에서 쓸모가 없고, 무진장 강한데 특별한 약점을 찾기 힘든 조합은 이른바 "사기 빌드"나 "사기 피팅"으로 통한다(그리고 다음 번 패치때 너프된다).

 게임 자체로도 훌륭한 재미를 가지고 있다. 잠시 이브를 쉬게 된다면, 아마 길드워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4. 이브 온라인 (2009-)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뭐 그랬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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